반영하는 창, 유동하는 몸
창에 비치는 풍경을 모티프로 실제 공간과 디지털 공간을 동시에 경험하며 유동하는 몸의 감각을 담아내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Flowing Window 시리즈라 부릅니다. 창에 비치는 풍경은 시선이 변화함에 따라 안과 밖의 풍경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듯한, 운동성을 지닌 평면 이미지라는 점에서 저를 매료했습니다. 이러한 창에 비치는 풍경이 가지는 운동성과 유동성에 기대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밀접하게 뒤섞이는 감각을 은유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실제 풍경을 찍은 이미지와 스크린샷 이미지들이 혼재된 휴대폰 갤러리를 스크롤하며 반복적으로 보는데, 이는 실제 몸으로 경험한 촉지적 공간과 가상 공간에서의 경험을 뒤섞고 구분을 희미하게 하며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듯한 공간성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러한 스크롤의 감각은 제 몸의 감각과 매우 닮았다고 느껴지며, 이를 투영한 공간성을 화면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제 회화는 산책 중에 직접 바라보고 찍은 창에 비치는 풍경 이미지와 함께 온라인 경험에서 수집한 스크린 샷 이미지들이 콜라주되면서 패치워크 (patchwork)같은 형태를 이룹니다. 동시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그래픽 이미지들, 온라인 편집샵의 연출된 오브제 사진들, 생중계되는 패션쇼에서 크롭되는 다양한 질감의 패턴들을 캡쳐한 스크린 샷 이미지들은 구상과 추상, 드로잉과 색면, 그리드와 제스처의 경계를 넘나 들며 화면에 운동성을 부여합니다.
창에 비치는 풍경 모티프는 회화의 평면을 인식하는 제 감각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제게 회화의 평면은 현재의 감각을 투영하는 장소로 여겨지고, 때문에 캔버스를 대면하는 그 순간 제 몸에 진동하는 감각이 마치 창에 맺히는 상이나 자국처럼 남게 됩니다. 이 떄 가상처럼 존재하는듯한 제 안의 경험들이 현실의 물질과 만나는 순간에 집중합니다. 때문에 고정되고 닫힌 형식을 갖기 보다는 순간의 몸의 감각을 담아낼 수 있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형식에 더욱 흥미가 있습니다. 저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디지털 편집 수단을 사용해 미리 완성된 이미지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배제하고, 직관에 의한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콜라주 형식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회화는 제가 직접 바라본 창에 비치는 풍경들을 그린 것에서 시작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모든 영향들을 흡수해 진동하고 움직이는, 당시의 제 자신을 채우고 있는 감각들의 변화 그 자체를 그린 것에 가깝습니다.